자살에 대한 칸트의 입장을 살펴보면 아마 칸트가 얘기하는 내재적 존엄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살인에 대한 칸트의 입장이 왜 내재적인 존엄성을 그렇게 강조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증거라는 거죠. 일단 살인을 칸트는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살인은 허용될 수 없다.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고 보는데요. 일단 살인의 경우에는 희생자를 수단으로 취급할 뿐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일단 지금 살인 얘기했는데 자살에 대한 칸트의 입장인데요. 일단 먼저 살인은 자기 자신을 죽인 게 아니라 타인을 죽이는 거죠. 살인의 경우에는 희생자를 수단으로 취급할 뿐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 존중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며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성적인 능력에 대한 존중이다. 따라서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와 똑같이 용납될 수 없다. 그러니까 살인인 경우에는 당연히 이것은 타인을 수단으로 취급한 것인데 마찬가지로 자살인 경우는 나를 수단으로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죠.
고통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면 나를 고통 완화 수단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수단으로 이용되는 물건이 아니며 나의 목숨을 처분할 권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없다. 따라서 자살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 살인은 말할 필요도 없고 자살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 얘기하는데요. 결국은 칸트가 보기에 인간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고귀한 존재고 수단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되는 그런 인격을 갖춘 고귀한 존재인데 결국은 자살이라는 행위는 바로 그 이것을 파괴하는 행위다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동물은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이렇게 절대로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이른바 목적으로 대야 하는 그런 소중한 존재인데 동물은 어떤 존재일까요. 칸트에게서의 동물은 인간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만큼의 가치를 갖는 이른바 수단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동물 학대가 나쁜 이유는 동물들이 피해를 당하여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 결과 간접적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조금 더 쉽게 설명한다면 만약에 어떤 사람이 굉장히 동물을 많이 학대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그렇다면 칸트가 보기에는 그렇게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른 인간에게도 학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동물 학대가 나쁜 이유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학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쁜 행위다.
그러니까 동물 학대가 나쁜 것이다.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칸트는 동물에게서는 자기의식이 없다. 그리고 판단력이 없고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동물에 대해서 직접적인 의미를 주지 않고 동물에 대한 간접적인 의무만을 지닌다. 칸트의 입장은 동물에게는 권리가 없지만 잔인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 왜 인간에게 그것이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래서 동물 복지론의 근간을 이룹니다. 그런데요. 애니멀 웰페어 동물 복지론 동물의 복지 얘기했었지만 조금 더 이거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가 애니멀 라이츠라는 말입니다. 애니멀 라이트죠 동물의 권리죠 동물의 권리가 있다는 거죠. 동물의 권리 이것은 흔히 공리주의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공리주의는 도덕적인 반경에 철저하게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유전적인 존재를 다 포함하죠 그러니까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유전적 존재는 인간뿐만 아니라 당연히 동물도 포함되죠. 그러니까 도덕적 반경에 동물이 포함된다는 얘기는 당연히 동물의 권리도 인정해야 하겠죠. 그러니까 공리주의가 표방하는 동물은 공리주의가 표방하는 어떤 동물은 학대받지 않을 동물의 권리가 있다는 의미에서 이 동물 권리론 과 바로 이 동물 복지론 동물 복지 이것은 상당히 대조를 이룬다고 볼 수 있죠.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목적이고 다른 여타의 존재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런 칸 테이의 인식이 또 나름대로 굉장히 비판받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어쨌든 사실 칸트의 핵심은 이런 어떤 칸트의 동물관 이런 것보다도 칸트가 말해야 하는 핵심은 동물과 자연을 수단화하자 이런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정말 이 사회 속에서 인간을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에 그리고 바로 이 목적을 대하라는 것에는 칸트가 강조하는 바로 내재적 존엄성 이게 이제 토대를 이룬다는 거죠. 결국은 칸트의 핵심은 바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세 번째로 속성적 존엄성의 철학적인 어떤 그런 기반 토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이 속성적 존엄성의 철학적인 토대로서는 우리는 두 명의 사상가를 주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먼저는 토머스 홉스 그리고 두 번째는 데이비드 흄입니다. 두 사람 다 어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을 대변하는 아주 중요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먼저 홉스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머스 홉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아마 제일 중요한 개념은 자연권과 자연 상태입니다. 자연권이란 뭘까요. 자연권이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건 사용할 권리가 개개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런 권리를 행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세상이 홉스가 말하는 자연 상태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물건을 원하지만 공동으로 향유할 수 없을 때 그 두 사람은 적이 된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이야기했던 말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문구인데요. 그가 묘사하는 인간의 모습은 오늘날 심리학적 이기주의라 불리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심리학적 이기주의는 말 그대로 어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는 어떤 디스크립티브 기술적인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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