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를 우리가 서양의 어떤 계몽주의 철학자의 어떤 대표 격으로 간주하는데요. 하지만 우리가 보다 면밀히 살펴보면 바로 이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강조했던 이 칸트 사상을 소급해보면 이른바 칸트 사상의 원류는 우리가 방금 살펴봤던 루소의 사상과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인간 존엄성에 대해 정말 가장 뚜렷하고 강력한 견해를 보여준 철학자 바로 칸트입니다.
그는 인간 존엄성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도덕을 한번 세워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날 보편적인 차원에서 인간 존엄성을 이야기할 때면 그래서 존엄성에 대한 칸트의 정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칸트를 제외하고서는 보편적인 차원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존엄성에 대한 그의 정의는 너무나 간결합니다. 인과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상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은 가치로 환산될 수 있으나 목적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갖는다. 여기 보면 전자의 가치가 있고 여기는 후자의 존엄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의 가치는 우리가 조금 더 염두에 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가격을 매길 수 있고 교환이 가능한 시장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얘기하는 이 존엄성은 이것도 사실은 가치인데요. 도저히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그런 가치가 아니라 그러니까 교환이 불가능한 도저히 환산이 불가능한 아주 내적인 가치를 가진 것 우리가 지난번에 봤었던 내재적인 가치 뭐 이런 의미에서의 존엄성을 의미하는 거죠. 그러니까 인과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상의 세계 우리가 쉽게 얘기하면 이 자연 세계 이 자연 세계에서 모든 것은 다 시장의 가치로 환산될 수 있지만 인간만은 도저히 환산이 불가능한 이런 존엄성 내적인 가치를 갖는다. 이렇게 이제 칸트는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특징적인 점은 존엄성에 대한 칸트의 견해가 소수의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탁월성에 대한 평가 우리가 지난번에 봤었던 어떤 키케로의 그런 어떤 존엄성이죠.
그런 토대를 둔 것도 아니고 또 가치 평가자의 가치 어떤 부여 행위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성 자체에 토대를 두었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인 점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성 자체가 존엄성이라는 것입니다. 칸트는 윤리 상악 정초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이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조건이 되는 것은 단순히 상대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즉 가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적 가치 즉 존엄성을 갖는다. 여기 아까 얘기했던 것이죠. 바로 이 내재적인 가치 내적 가치 이것이 바로 이제 존엄성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품는 존경 혹은 타인이 나에게 구할 수 있는 존중은 다른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이다. 이렇게 얘기하죠.
그러니까 타인도 똑같이 어떤 존엄한 존재 다 이렇게 이제 인정해줘야 된다는 말이겠죠. 그렇다면 칸트는 왜 내재적인 차원의 존엄성을 이렇게 강력하게 주장했을까요. 아마 칸트의 철학적인 관심은 인과 법칙을 넘어서는 인간 자유의 보편적인 근거를 찾는 게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자유의 근거를 찾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자유는 뭡니까 인간에게 있어서의 자유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결단할 때 확보가 가능한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도덕 법칙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목적 그 자체로 여길 수 있는 존재 즉 어떤 존엄한 존재의 하나의 조건이 되는 셈이라는 것이죠. 이처럼 칸트는 인간이 가진 강점 가운데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 인간이야말로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칸트는 어떤 내재적 차원의 존엄성을 굉장히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거죠. 그 다음에, 인간의 감정은 사실 소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감정은 사실은 굉장히 기복이 심하죠. 변덕스럽고 아주 어떨 때는 이기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칸트는 인간의 감정을 굉장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성적인 존재자는 자율적이기 때문에 자기가 한 약속에 대해서는 끝까지 그것을 지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끝까지 지키는 것을 보통 신의를 지킨다는 말이죠. 그러면 신의라는 것은 뭡니까? 감정처럼 변덕스럽지 않고 또 뭐 계산적이지 않은 능력인데요. 이것이야말로 이 신의는 인간이 가진 선의지의 자체에서 나온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성적인 존재자는 선한 의지 즉 양심적인 판단을 올바로 실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의지라는 것 자체가 어떤 행동을 어떤 할 수 있는 도덕성의 출처로서 행동의 어떤 하나의 강한 추진력이 되는 부분이죠. 그러니까 이성적 존재는 선한 의지 즉 양심적인 판단을 올바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것들이 이제 다 칸트가 내재적 차원의 존엄성을 강조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제 칸트는 더 나갑니다. 이런저런 칸트는 이런 통찰로부터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원칙을 담고 있는 무조건적인 도덕 명령 그래서 보통 정언 명령이라고 얘기하죠. 목적성의 원칙을 담고 있는 어떤 일종의 어떤 도덕을 수립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이용하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를 하여라 너무나 우리가 이제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많이 들었죠.
우리가 목적 그 자체로서 상정해야 할 인간성이란 어떤 욕망의 주체로서의 인간 본성 욕망의 주체로서의 그런 어떤 인간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의 주체로서 가져야 할 인간성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성을 가진 주체는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대하듯 다른 이성적인 존재자도 마찬가지로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이성적 존재자인 타인도 마찬가지로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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